예배와 찬양

주일 예배 설교


형제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김범식 목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요한일서의 저자 사도 요한은 빈번하게 말합니다. 같은 저자라고 생각되는 요한복음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가졌다고 말합니다(요 1:12).
사랑을 말하면서 특별히 형제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요한은 사랑의 경험을 통해 삶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의 어부로 살다가 아버지 세베대와 배를 버려두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야심과 경쟁심 그리고 성취에 대한 욕구가 유달리 강하기에, 방해가 되는 존재에 대한 분노가 컸던 형제였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였습니다(막 3:17). 그들의 어머니가 아들들의 영광을 예수님께 요구했을 때 다른 제자들은 이 형제에 대한 평소의 불만을 결국 터뜨렸습니다. 함께 하지 않는 축귀자들,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던 형제였습니다. 이런 모습의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성품과 삶이 바뀌고, 드디어 ‘사랑의 사도’ 로 불리기까지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둘째, 형제사랑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악하게 될지를 알았습니다. 창세기 4장의 가인은 사랑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형제살인을 한 사람입니다. 요한은 가인을 사탄에게 속한 불행한 사람의 전형으로 말합니다.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신의 것을 하나님이 받지 않은 것에 가인은 분노하고, 결국 아벨을 죽입니다. 하나님은 믿음 없는 가인의 삶을 아셨고, 그의 마음에 있는 죄의 정욕을 다스리기를 원했지만, 가인은 분노와 증오심으로 형제를 살인합니다. 형제에 대한 미움이 살인과 같다는 주님의 말씀처럼(마 5:21), 사랑하지 않는 무관심은 언젠가 미움이 되고 결국 악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 것만으로 사랑이 되지 못합니다. 사랑은 선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셋째, 예수님의 사랑을 닮는 것이 진정한 형제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주는 고귀한 사랑을 말씀하시며, 우리를 자신의 친구로 삼으셨습니다(요 15:13-14). 친구사랑을 실천한 것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면 마땅히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자발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원수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는 내 곁에 있는 이웃을 당연히 사랑해야 하지만 우리는 마음과 감정만 있고 행동하지 못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결국 마음도 없어진다는 C. S. Lewis의 말처럼, 형제의 곤경을 보고 돕지 않으면, 언젠가 마음마저 없는 악한 가인이 될 것입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창 4:9) - 사랑을 외면하는 악한 자의 항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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