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진보와 보수가 갈린다. 남과 북은 1950년부터 3년간 치열하게 전쟁을 했기 때문에 아직도 레드 콤플렉스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일주일 동안 머물며 올림픽 축하공연을 두차례 하고 엊그제 북으로 돌아갔다. 단장인 현송월은 서울 공연에 깜짝 출연하여 노련하고 세련된 무대매너를 선보이며 <백두와 한라는 내조국>이라는 북한곡을 멋지게 불렀다.

이 곡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고 축하곡으로 발표한 곡이다. 핵미사일 개발에 성공했으니 통일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기라도 한 것같은 자신감을 노래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현송월은 노래를 부르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그녀의 왼쪽 가슴엔 김일성, 김정일 뱃지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곡을 들으며 노정객 김영남은 세차례 눈물을 닦아냈다. 그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90세가 넘은 북한의 형식상 국가수반인 그는 이 노래가 남한에서 연주되는 장면을 보면서 어떤 감회에 젖은 것일까? 통일이 다가온 것에 대한 감격이었을까? 아니면 전세계에 보여주는 쇼맨쉽이었을까?

우선 북한이 서둘러 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고 대규모 축하공연단과 응원단을 보낸 속내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핵개발로 인해 미국 및 전세계로부터 받는 경제 제재로 그들의 궁핍은 극에 달해 있다. 거기까지는 참을수 있는데,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져 있는 징후가 여러곳에서 감지된다.

이에 북한은 남북의 화해모드 조성이 절실해진 것이다. 마침 한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이 화해하고 있다는 메세지를 전세계에 던질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최고위급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보내는 파격적인 제스처를 보여줬다. 이런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행위를 우리가 놓치면 안된다. 이를 간과할만큼 순진한 우리도 물론 아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같이 손을 마주잡고 통일을 노래하는 게 그들의 정치적 쇼에 놀아나는 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과연 그런가? 물론 북은 “적화통일”을 노래하고 있다. 현송월이 굳게 거머쥔 주먹이 이를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 미소속에 숨겨진 그들의 속내를 모를만큼 우리는 순진하지 않다.

이 노래가 1970년대 초반에 불리웠다면 수구가 말하는 위기의식이 현실감있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북한이 우리보다 잘살고 있었고 체제경쟁에서 우리는 북에 밀리고 있었기에 살떨리는 위기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경제통계는 1970년대 중반에 우리가 북한을 경제적으로 앞서기 시작했다는 데이터를 보여준다. 그로부터 40년이 넘은 지금 시점에서는 어떤가? 남한경제 규모는 북한의 50배에 가깝다고 추정한다.

이미 체제경쟁의 게임은 끝났다. 남한과 전쟁을 할 경우 북한은 일주일 안에 망한다고 군사학자들은 말한다. 이 정도의 경제력 차이에서 전쟁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이긴다고 전쟁을 해서 북한을 하루속히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입는 피해도 막대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붕괴직전의 상태에 와 있다. 이에 마지막 수단으로 핵이라도 개발해서 미국과 체제유지를 위한 직접 협상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북한이 두손 들고 항복할때까지 밀어붙이는 게 방법일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북한을 극한까지 몰아붙였을 때 과연 북한은 항복을 할까?

이런 치킨게임이 정답이 아니라고 믿기에 국민들은 진보를 선택했다고 본다. 북한의 통일노래를 우리가 따라 부른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이 숨기고 있는 의미까지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듯이, 그들을 안고 가야 한다고 해서 그들의 체제까지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변덕이 심한 못난 동생이지만 달래가면서 품어안고  가야 한다고 믿는다. 절대 누구에게도 전쟁의 명분이나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을지도 모르는 가능성들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조심스럽게 가야할 길이기에 평화통일의 길은 길고도 어려운 길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국제정치적 역학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동독이 서독에 자연스럽게 흡수된 통일모델이 우리에게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

북한이 어느날 갑자기 붕괴되었을 때 북한이 우리에게 흡수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갑작스런 붕괴의 경우 북한이 누구의 땅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냉엄한 지정학적 현실이다. 북한이 지금의 상태에서 붕괴되는 것이 우리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