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본 글은 관리자가 기존 홈페이지에 있었던 글을 임의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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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처음 집에 왔을 때 남편은 딸아이가 생겼다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서 아빠라고 불러보렴.”
남편이 그럴 때마다 아이는 말없이 입술만 지그시 깨물었다. 나는 딸아이가 잠든 밤에 자기 방 서랍장 속에 깊이 넣어 둔 일기장을 보았다. 딸아이에게는 일기장이 두 개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는 학교 선생님에게 검사 받는 일기장이고, 다른 하나는 밤마다 문을 잠그고 쓰는 일기장이다.

“하늘나라에 가 계신 아빠 보세요. 아빠! 목사님이 나에게 자꾸만 아빠라고 불러 보래요. 그렇지만 나는 목사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만약 아빠 외에 다른 사람에게 아빠라고 부른다면 하늘나라에서 아빠가 너무 섭섭해 할 것 같아서예요. 아빠! 아빠 외에는 난 그 누구에게도 아빠라고 부르지 않을 거예요.”

나는 목사님에게 아이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아이들 모두에게 집에서도 목사님을 아빠라고 부르지 말고 목사님으로 부르도록 통일시켰다. 평소 딸아이가 “아빠! 아빠!” 부르는 것을 가장 부러워했던 남편은 아들들에게서까지 아빠라는 호칭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딸아이의 얼굴은 밝아졌다.

남편은 우리 막내아들과 딸아이에게 양쪽 팔을 베개로 내주고 아이들에게 잠을 자라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 아들 머리는 무거워서 한쪽 팔은 저려 오는데 딸아이가 베고 있는 팔은 전혀 머리 무게가 안 느껴진다고 했다. 어린 것이 무엇이 그토록 조심스러웠을까? 세월이 가도 그 아이들의 마음엔 없어지지 않는 조심스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나에게는 말 못할 짐이 있었다. 그것은 그 아이들만의 자유로운 집을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부담이었다. 그러나 우리 집도 19평짜리 시영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었던 터라 그들에게 독립된 집을 마련해 준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저 언제나 기도 속에만 있을 뿐이었다.

옷을 자유롭게 벗고 입는 것이 서로에게 눈치가 보여질 때 쯤, 서울시에서 남편에게 서울 시민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전갈이 왔다. 무료 탁아소 일을 3년 동안 한 것과 (남의) 아이들을 기르고 있는 것이 공로로 인정되었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그 일로 상을 받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부부는 극구 거절했지만 노원구(청)에서는 우리 구에서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상 수상자가 나왔다고 좀처럼 철회할 눈치가 아니었다. 노원구(청)에서는 목사님이 소원하는 것 두 가지를 들어줄 테니 상을 거절하지 말고 받으라고 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줄 아파트 하나를 달라고 했다.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상 상품은 상금 100만 원과 두 가지 소원이었는데 그 한 가지 소원으로 아파트를 받았다. 그때 때를 맞춰 아이들의 먼 친척뻘 되는 할머니 한 분이 아이들을 의지해서 같이 살고 싶다고 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가족이 이루어졌다. 우리 집에서 마을버스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아이들의 독립된 집이 마련된 것이다. 이제 이 아이들은 마음 놓고 옷을 벗을 수 있고 무엇보다 자기들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는 그들의 안식처가 생긴 것이다.

남편의 두 번째 소원은 도로변에 세운 교회 입식 간판을 철거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성도들이 목사님에게 시시한 것을 구했다고 놀려대면 남편은 이 두 가지는 아내의 걱정거리였는데 자신은 아내의 걱정만 풀리면 더 이상 소원이 없으니 잘 구한 것이란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주님이 물으신다면 나는 “아이들이 우리 집에서 독립해서도 주님과 사람 앞에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 유정옥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