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2009년을 보내면서 저 역시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송 집사님이 주신 숙제처럼 ‘한 가지’를 찾아봅니다.

올 한해 내가 깨우친 것 (one thing I learned).
그래서 해야 할 일 하나 (one thing I do),
내가 소망하게 되는 한 가지 (one thing I long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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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런 저런 복을 간구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애들 잘 되기,
모두 건강하기,
경제적 부담 감당하기,
직장에서의 성과, 등등.

그런데 일년을 지나놓고 보니까
내 한 해를 어떻게 살았나, 그 성적표는 이런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데서 매겨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걸 잔뜩 밤새워 공부했는데, 시험 문제는 전혀 엉뚱한데서 나오는 것 같이 말이지요.

그 엉뚱한 곳,
곧 내 삶의 성적표가 매겨지는 영역은 다름아닌
올 한해 내가 살면서 맺었던 ‘관계’들인 것 같습니다.

이 관계는 풍성했는가.
비틀리고 메마르지 않았는가.
너그러움과 감싸 안음이 있었는가.
그 관계에 가슴 뛰며 행복해 했는가.
그래서 내가 그만큼 풍성해졌는가.

아쉽게도 올해 제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살면서 직장의 성격상 ‘관계’로 시달리는 경우는 비교적 적었는데,
올해는 유독 보직인가 뭔가를 하면서 그렇지 못했습니다.
경영인증, 구조조정, 등 굵직한 현안들이 있어서 이를 추진하면서 많은 이해관계들이 충돌했고,
그 와중에 ‘상처’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도 상처를 입었고 다른 사람들도 상처를 입었습니다.
제가 상처를 준 경우도 있고, 제가 상처를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를 넘기기 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을 마음 먹었습니다. (one thing I do).
‘관계의 회복’입니다.
내가 상처 준 사람이든, 내가 상처 받은 사람이든, 이 관계를 회복하고 새해를 맞자.
이 상처는 올 한 해로 족하다, 이걸 내년까지 가지고 가지 말자.
다 털어내고 새롭게 새해를 맞자.

이렇게 마음 먹고 나니까 관계에 대한 어떤 ‘방향성’이 생겼습니다.
관계를 바람 부는 대로, 그 때 그때 상황에 따라, 그 우연적 전개에 맡겨 두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할지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런 방향성과 목표를 가지고 관계를 접근했고,
그래서 몇 개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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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의 회복은 무엇보다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역사인 것 같습니다.
그 관계를 생각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지,
배신감, 모욕감, 경멸감, 혐오감, 거부감, 등등
이런 쓰라린 상처의 파편들 없이,
편안하게 미소를 지우며 그 관계를 떠 올릴 수 있는지.
그렇다면 관계는 회복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관계를 떠 올릴 때 조금이라도 불편한 느낌이 있다면,
따끔한 아픔 혹은 씁쓸한 뒷맛이 있다면,
아직 숙제는 남아 있습니다.
년 말까지 숙제 할 시간이 별로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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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관계’를 생각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가정에서의 관계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맺는 관계는 전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지요.
이렇게 마음대로 안 되는 관계들에 시달리다 보니까
그 욕구불만을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여기는 관계에 쏟아 붓는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곧 가정에서의 부부관계고 자식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내가 백 프로 주인(Master)이다.
이 관계는 다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내 컨트롤 하에 있다.
전적으로 내가 지배하는 관계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대게 이런 가정을 가지고 부부관계, 자식관계를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근거 없는 가정이지만, 이 가정은 우리 의식 저변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맺는 부부관계, 자식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가족 관계에서 또 다른 자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참 온유한 사람이 자식에게 있어서는 매우 강압적인 경우가 생기고,
더 말할 나위 없이 인자한 사람이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잔인해 지기도 합니다.  

자녀가 떠나있는 저희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특히 부부관계가 문제입니다.
문제가 있어서 문제가 아니라 (물론 문제가 없지 않지만요)
살면서 다른 모든 관계가 하나 둘씩 사라지더라도
끝까지 남아 있는 관계가 부부관계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본다면 저희뿐 아니라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는 부부관계로 보입니다.

부부관계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이걸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하나를 따지게 됩니다.
누가 잘했다 잘 못했다,
누가 더 착하다 혹은 더 못됐다,
우리는 주로 이런 것들을 놓고 싱갱이 하는데,
정작 부부관계의 성적표는 전혀 다른데서 매겨짐을 깨우쳤습니다.
한 가지 깨우친 것입니다 (one thing I learned).

그건 ‘방향성’과 ‘목표’입니다.
부부관계 역시 다른 모든 관계와 마찬가지로
분명한 방향성과 목표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면 좋은 부부관계가 되고,
무덤덤하거나 싫어지면 나쁜 부부관계가 되는
그렇게 감정에, 그러한 감정을 일으키는 상황의 전개에,
이 관계를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향성과 목표와 지향점을 가지고 이 관계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방향성, 목표, 지향점이 제대로 되어 있으면 부부관계는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
아무리 치고 박고 싸워도 안심입니다.
마치 강건상 목사님이 ‘믿음은 방향이다’ 라고 강조하신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지금 서로 좋아한다 한들, 곧 지금의 감정의 상태와 상관없이
한 순간 ‘위기의 주부’요 ‘위기의 남편’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항상 외줄타기 마냥 아슬아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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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관계의 성적이 매겨지는 그 지향점, 방향성, 목표는
한 마디로 ‘언약’(covenant)이란 말로 포착되는 것 같습니다.

결혼은 ‘계약’(contract)이 아니라 ‘언약’(covenant)이다.
계약은 마음에 안 들면 파기할 수 있지만, 언약은 그럴 수 없다.
언약은 우리가 깨뜨릴 수 없는 약속이다.
마치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이 그런 것처럼…..

이건 제 말이 아니고
얼마 전 친구 아들의 사랑의 교회 결혼식에 갔다가
오정현 목사님 주례사에서 들은 말씀입니다.

부부관계는 바로 이 ‘언약’이란 기초 위에서 세워지는 관계임을 알게 됩니다.
부부관계가 가져야 하는 방향성, 목표, 지향점 또한
단순히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의 유지가 아닌,
바로 이 깨뜨릴 수 없는 언약에 대한 분명한 의지와 각오와 헌신에 다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실로 그 옛날 우리로 눈앞에 불이 번쩍 들게 했던  
아빠의 회초리처럼 따끔한 깨우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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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소망하는 것도 있습니다 (one thing I long for).
공동체 관계입니다.

공동체는 모든 관계의 찌꺼기를 용해시키는 용광로입니다.
올 한해 장교님들 모시고 프로그램 진행 하면서, 이 공동체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세상 관계들로 마음이 시끄러울 때도,
가족 관계가 딱히 탐탁치 않을 때도,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한 마음으로 즐거웠습니다.

이처럼 우리 공동체를 이끈 즐거움의 비밀은 무엇이었나 생각해 봅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 배려와 존중, 수고를 자청하는 헌신, 이런 것들 아니었나 싶고,
바로 이 가운데 예수님이 아주 흐뭇해 하며 계셨던 것 같습니다.

2010년에는 이런 공동체의 기쁨이 더욱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공동체 관계의 비밀이 우리의 다른 모든 관계로 퍼지고 차고 넘쳐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대학교회가 이렇게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성탄, 희망찬 새해 맞으시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