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오늘은 예수의 장례식을 묵상하였습니다. 그 동안 수도 없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장례식 장면에서 감흥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십자가 상의 예수와 부활의 예수 사이에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음과 부활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낀 장례식 장면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장례식 장면 속에서 오늘 큰 의미를 찾았습니다.

각 복음서에는 예수의 장례식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 : 57 ~ 61, 마가복음 15: 42 ~ 47, 누가복음 23 : 50 ~ 56, 요한복음 19 : 38 ~ 42. 그런데 십자가 상에서 죽으신 예수의 장례식을 치른 사람으로 공관복음에 묘사된 사람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고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니고데모가 같이 등장합니다. 요셉과 니고데모가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골고다 현장에 있었던 제자로 사도 요한이 유일했기 때문에 이 증언은 신빙성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 그룹의 일원이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의 숨은 제자들이었습니다. 숨어서라도 제자가 된 것을 보면, 그들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유월절 전날 목요일에서 금요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심야에 붙잡히셔서 산헤드린의 수장인 대제사장의 집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빌라도 총독의 재가를 거쳐서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채 12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제3시(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제9시(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유대인의 규례대로 3시간 후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안에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제자들 중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도 그저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 사형선고를 내린 산헤드린 법정의 구성원이었던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섰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Coming Out’한 것입니다.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려면 숨어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밝힐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무기력하게 달려 죽은 스승의 장례를 치를 제자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용감히 나섰습니다. 그 선택에 따른 후폭풍을 그들이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후 산헤드린에서 축출되었을 것입니다. 사회적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던 산헤드린 회원권을 포기하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한 행동이었습니다. 잠깐 동안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예수께서 무기력하게 죽은 마당에 장례를 치르느라 지불한 대가치고는 큰 것이었을 것입니다. 죽은 스승이 사흘 후에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용감해질 수 있었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적 상상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라고 니고데모가 예수께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이라 믿고 있었던 예수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용기가 그들의 마음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Coming Out’ 이후에 그들은 많은 것을 잃기는 했지만, 오히려 이후에는 공공연히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용기가 성서에 명예로운 이름이 오르는 영광을 그들에게 부여했고, 무엇보다 천국 시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용감한 천국 시민상’을 공동 수상하는 영예를 그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