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고갯마루 노송



                                              
마을이 들어서기 전부터 길이 있었고

길이 나기 전부터 지켜왔다는 고개

구름이 자주 넘나드는 그 마루터기에

늘 홀로 서있는 당신




동학 년 몇 해 뒤 이사 오신 할아버지

왜정 말기 남양군도로 떠나시던 아버지

철없이 밑둥치에 일필휘지 내갈기던 애송이

묵묵히 다 지켜보고




큰물 지려면

가슴 깊숙이 간직한 설움 뱉어 큰 산을 떨게 하여  

영靈이 있는 게라고

대보름이면 백설기 올려놓고

동제를 모시기도 했는데




며칠이고 눈이 내린 추운 날이 있어서

허공을 찢으며 우듬지를 잃고는  

석삼년 철철 흘리던 진물

머잖아 무슨 일이 있을 게라는 시린 말들

마을을 휩쓸고 먼 타향까지 뜨끔하게 하더니  




구제금융 리먼 발 금융위기 훌훌 털어내고  

꺾인 자리 아문 상처

서슴없이 내보이며

객짓밥 삼십 여년 근사한 허울 쓰고 돌아오는 이를

대뜸 애송이로 만드는 구나,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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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

한창 물오르던 시절 같으면 금방 대답할 수 있는 물음에 지금 자꾸 망설여지는 것은

내가 나이 들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어려서 우러러보던 소나무를 나이 들어서는 더 우러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을보다 먼저 있었다는 길도 큰 나무를 보면 빗겨 돌아간다.

길도 큰 나무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