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장인은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육이오가 나서 친형과 함께 월남(越南)하였다고 한다. 모친과는 그때 헤어져서 평생 만나지 못했다. 이후 주문진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그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동네교회에서 이것저것 무엇인가를 나누어 주었는데 어려운 시절이라 받는 재미가 좋아 한번 두번 나간 계기가 세례까지 받게 되었다고 장모가 전한다.

장인과 장모는 60년대초 중앙대 캠퍼스 커플로 만나 (장인은 상대 경제과,장모는 약대 후배) 40년을 해로 하였다. 슬하에 2남1녀를 두었고, 건강을 잃기 전까지는 남부러울 것 없이 사셨다. 유명 의류업체를 형과 함께 경영하였고 장모가 약국을 운영하였으니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였던 셈이다.

사십대 후반부터 고혈압과 만성신부전증이 악화 되었고 최근 15년 동안은 신장투석을 하셨다. 유미 집사와 결혼한지가 만 15년이니 나는 장인의 건강한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셈이다. 장모가 가리봉동에서 약국을 하실 때 장인의 주 취미는 약국 앞에서 바둑두기, 동네 아저씨들 장기 훈수하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늘 해맑은 표정으로 순박하게 웃으셔서 노동에 지친 구로 3공단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많으셨다고 한다.  

93년도에 결혼 승낙을 받으려고 처가에 찾아 갔었다.
당시에 동네약국을 하던 장모는 내심 월급쟁이에(그것도 평소 자주 들어본 삼성생명도  아닌 삼성(안국)화재에 다닌다는) 게다가 홀어머니에 장남이라는 악조건을 무척 탐탁치  않게 여겼는데, 장인은 기업경영을 해본 경험이 있고 경제학 전공을 하셔서 그런지 오래된 환자이면서도, “회사 주가가 얼마냐?” “종업원은 몇명이냐?” 등등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그리고 나서 "지금은 크지 않지만 아주 탄탄한 회사다, 그리고 주가를 보니 상당히 비전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 정도의 회사에 입사할 정도면 학교 다닐때 성실하게 공부한 것이다." 라며 밀어주신 것이 힘이 되어 결혼 승낙을 받았다.

세상적으로 보잘것 없었고 하나도 내세울 것 없었지만 내가 가진 단 하나의 세상적인 자랑 "삼성(당시 안국)화재에 다닌다는 것"이 장인의 마음에 흡족했던 것 같았다.
장례를 치르면서 23살때 먼저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대학교 2학년 맏상주라 손님이라곤 고등학교 동기들 3명이 고작이었던 20년전 이맘때가 생각났다. 그때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에  비하면 장인은 참 행복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비교적 좋은 사위놈(?)을 만나서 시끌벅적한 마지막 잔치상을 받으셨으니 말이다.
물론, 손님이 많고 적은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마음은 솔직히 그랬다.  

결혼 15년동안 처가집에 가면 무뚝뚝하게 TV만 보고 오거나, 소파에 누어서 졸다가 오니, 아내는 나를 " 남보다 못한 사위" 라고 늘 핀잔을 주곤 한다. 아내는 삼형제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막내 시동생을 대학 졸업시키고, 장가 보냈으며, 둘째 시동생은 5년 동안 병수발 하였던지라 시집에서의 위치가 확고하다.
또한 성격도 발랄하여, 시어머니로부터 "딸보다도 더 귀한 며느리"라며 인정을 받아,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다닌다.  
    
오늘 장인의 삼우제(三虞祭)를 맞아 온가족이 추모예배를 드렸다.
믿음이 없었던 처가에 50여년전 주문진 수산고등학교에서 처음 세례를 받았던 우리 장인이 뿌린 믿음의 씨앗이 자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가을 짧은 투병 기간동안 강원도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양양,속초,강릉을 거쳐 주문진 시장에서 문어 한 마리를 사서 삶아 먹었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나도 장인처럼 믿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가 되고 싶다. 내가 받은 만큼 시간과 물질을 쪼개어 나누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해 나가고 싶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