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얼마 전 좋아하는 분들과 모인 자리에서 불쑥 사추기 얘기를 꺼냈습니다.
다들 이런 저런 삶의 주름과 굴곡을 몸으로 살아온 분들이기에
과연 사추기를 겪었는지 또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가 궁금했던 것이지요

사추기를 생각해 봅니다.
어린 시절 보낸 사춘기와 비교해서
어떻게 같을까 다를까 대충 이런 생각이지요.  

사춘기가
새로운 자기, 그 어떤 사회적 인격적 정체성을 찾고 세우고자 하는 애타함이었다면,
사추기는 거꾸로
살면서 세워온 그러한 자기가 무너지는 씁쓸함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회적 자기
인격적 자기
신앙적 자기
살면서 쌓아온 많은 자기란 모래성이 있는데

그래서 겉으로는 이제 이러한 성 쌓기를 멈추고 앉아서  
마침내 평온히 쉬는 듯 싶지만
그러나 어디선가 휙 하고 부는 바람, 성큼 다가온 썰물, 점차 짙어지는 땅거미에
이렇듯 정성껏 쌓아온 모래성이 조금씩
어느 한 귀퉁이에서부터 조금씩
그래서 마침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사추기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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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너지지 않는 모래성이 있는 걸 문득 알게 됩니다.
다른 것은 다 바람에 파도에 어둠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데
꿋꿋이 그것을 이겨내는 모래성 말이지요.

그 모래성은 특별한 아교로 이게어 만든 성입니다.
전혀 뭉쳐지지 않는 모래알들
그냥 속절없이 스러져 흩어져 버리는 그 삶의 모래알들을 단단히 이게는 특별한 아교입니다.
이 아교는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제 유명해진 이도형 집사님의 기도문을 읽으면서 그걸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감사’란 아교입니다.
‘감사’로 이게어진 모래성 만이 홀로 서 있다는 것이지요.

이 집사님의 기도문에서 보듯이
이런 저런 온갖 기도의 생각들로 어지럽게 도망 다녀 봤지만
결국 마침내 사로잡혀 무릎 꿇으며
마지막 피 토하듯 내뱉게 되는 기도는 ‘감사’란 것이지요.

다른 모든 자기란 모래성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지만
결국 남아 홀로 서있는 것은 ‘감사’로 만들어진 모래성이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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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여타 종교와 구별하는 가장 핵심의 감각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대답 역시 바로 ‘감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이 ‘감사’란 느낌은 참 특별한 감각입니다.
행복 불행 사랑 미움 화평 분노 등
우리 존재가 머무는 상태가 여럿 있을 수 있겠지만
이 ‘감사’란 감각이야 말로 우리 존재의 전 스팩트럼을 완전하게 덮는 감각인 듯 싶습니다.
이에 비하면 다른 감각이란 부분적이란 얘기지요.
그냥 우리 존재의 일부를 채우는 감각이란 것이지요.

반면 ‘감사’란 존재를 채우는 감각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감각인 것 같습니다.
그 바탕 위에서 우리 존재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감사’란 역설적으로 자기란 존재를 함몰시키는 감각인 것 같습니다.
내가 사라지고 내가 감사하는 대상 만이 남아있는 그런 인지의 상태라고 할까요.
그러나 내가 사라진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나도 있고 그분도 있으되 나는 없고 그분 만이 계신 그런 상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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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고 싶은 사람
사랑하고 싶은 교회
모두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