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17세기 어느 수녀의 기도
2008-02-02, 조회 : 1543
노진숙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작자 미상(17세기 수녀)
류시화 시인의 잠언시집 '지금 알고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읽다가
이 시를 읽고 어찌나 공감백배인지...^^
요즘의 내가 정말 해야 할 기도구나~ 싶었어요.
함께 기도하실래요? ㅎㅎㅎ
오진곤 2008-02-02
아니...벌써 노집사님께서...너무 앞서가십니다. 저라면 모를까...그저 겸손한 마음으로만으로 살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이화복 2008-02-03
같은 마음입니다...제게 꼭 필요한 글이네요...함께 기도할래요!... 감사합니다.
최승희 2008-02-04
노집사의 "노"가 "로"? 흰머리 숫자로는 내게 더 어울릴듯...
김종희 2008-02-08
마음에 닿아 가슴 뭉클합니다. 늘 잊지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