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한국은 지질학적으로는 안전하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위험하다. 한편 일본은 지질학적으로는 위험하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안전하다.”

한국과 일본의 입지조건을 이보다 정확하고 컴팩트하게 비교한 말이 있던가! 언제나 지진의 공포에 떠는 일본은 외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지금까지 일본을 점령했던 유일한 나라는 2차대전 중의 미국 밖에 없었다.

반면 한국은 연간 몇번의 태풍에 대한 두려움 빼고는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가 없다. 그런데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으로부터 번갈아 받은 외침은 셀수 없이 많다. 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국인의 성격이 급해지고 내부적 응집력이 상당히 공고해졌다고 학자들은 분석하기도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자연의 도전에 대해 인간이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도로, 항만, 공항, 철도 등을 건설하고 운송수단을 발전시켜가면서 인류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한계를 극복해왔다.

그러나 해수면 상승, 사막화, 가뭄, 태풍, 해일 등 자연의 공격 앞에서 인류는 아직도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노아의 홍수 이후 인류가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각 족속들이 어떻게 다르게 발전해왔는지를 지리적여건이라는 변수만으로 명쾌하고 설득력있게 설명해주는 책이 여기에 있다.

영국 언론인 팀마샬이 지은 <지리의 힘 Prisoners of Geography>가 바로 이 책이다.

“지리의 힘”이라는 번역보다 영어 원문 제목인 “Prisoners of Geography”가 이 책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전달해준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해도 결국 인간은 그가 속한 지리적 한계에 구속된다는 저자의 주장을 책의 원문제목이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세계 주요 지역 열개를 선정하여 그 지역에 속한 나라들이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어떻게 발전의 동력을 얻었는지, 아니면 어떤 지리적 여건이 발전에 한계를 노정해왔는지 이 책은 실감나게 설명해준다. 결국 인간은 공간적 제약에 묶일 수 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가진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시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현장을 돌아본 언론인답게 그의 글에서는 현실감과 현장감이 느껴진다. 각 나라의 차등발전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변수들 중에 저자는 지리적 여건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누구나가 어느정도 인식하고 있듯이 차등발전과 지리적 여건을 연결변수로 잡아 인류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지구라는 세계를 설명하는 이 책의 설명력은 탁월하다.

지금도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남미에서, 아시아에서 국가간 내지는 국가내 정치적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배경에는 서양세계가 과거에 이들 지역을 정복한 이후에 지리적 여건을 무시하고 정치적 이해관계 만으로 그어놓은 국경선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그의 설명을 읽으면서 “지리적 여건”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는다.

김미선의 번역도 매끄럽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