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평양공연을 보고
2018-04-05, 조회 : 1115
이영석a
두차례 평양공연을 마치고 어제 새벽 귀국한 한국 가수들의 공연은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두번째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강산에의 눈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강산에는 실향민의 아들로 태어나 고향을 눈물겹도록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아픔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는데 바로 “라구요”가 그 노래다. 그가 부모님을 대신해서 부모님의 고향을 방문하여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를 불렀으니 그가 느낀 감격이 어떠했겠는가!
한편 세련되고 노련한 진행솜씨를 보여준 서현은 단지 얼굴만 예쁜 가수의 이미지를 벗고 남북 모두에게 극찬을 받은 최고의 진행자로 자리매김했다는 생각이다.
또한 데뷔 50주년 기념공연을 준비하다 후두염에 걸려 쉬어야 한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방북공연에 기꺼이 참여한 조용필의 헌신은 그 어떤 찬사로도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지금부터 18년전인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만오년동안 일곱차례에 걸쳐 북한을 다녀왔었다. 당시는 남북화해 무드가 무르익고 있었고, 나는 북한 함흥 북쪽에 원전을 지어주는 KEDO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어 북한 출장을 다녀올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속초에서 배를 타고 함흥 북쪽 원전 건설현장을 방문하여 일을 보고 육로로 함흥으로 이동한후, 북한이 제공한 전세기를 타고 평양으로 이동하여 평양에서 일박을 하고 북경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일곱번 반복했다.
육로를 통해 함흥으로 이동하는 중에 북한의 벌거벗은 민낯을 그대로 볼수 있었다. 비포장도로가 굽이치며 넘어가는 고갯길을 느린 걸음을 힘겹게 내딛으며 걸어가는 군상들에게서는 절망만이 느껴졌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는 마태복음 28장 말씀을 연상시키는 종교적 슬로건을 새긴 생뚱맞은 기념탑 아래 파리하고 힘없는 얼굴로 널부러져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슬픔보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북한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배고픔과 헐벗음 밖에 주지 못하는 수령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늘을 향해 마음 속에서 얼마나 여러번 삿대질을 했는지 모른다.
“오 주여! 당신이 계시다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 장면의 의미를 제발 제가 이해할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 주십시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렀다. 변한 게 있다면 북한은 핵을 개발했고 국제제재는 강도가 더 심해졌고, 체제는 거의 붕괴직전에 와 있다는 것 정도다. 3대를 이어온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호탕한 웃음을 순수하게 믿을만큼 우리는 순진하지 않다. 그리고 치킨게임 하듯이 달려드는 그들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만큼 우리는 충분히 강하다.
다만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큰형의 마음을 가진 남한의 포용력이 우리를 인내하게 한다고 본다. 이미 끝난 게임이지만 경착륙이 아닌 연착륙을 만들어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큰형의 기다림이 우리를 인내하게 한다고 본다.
누가 두려움을 가지고 걱정하듯이 남쪽의 종북세력이 체제전복을 북한과 공모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가정인지 되묻고 싶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단언한다. 매카시즘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제 한달안에 남북정상이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에 핵이 없는 평화를 정착시키는 첫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이제 다시 내딛는 걸음이다.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의미있는 초석이 될수 있기를 기도한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강산에는 실향민의 아들로 태어나 고향을 눈물겹도록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아픔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는데 바로 “라구요”가 그 노래다. 그가 부모님을 대신해서 부모님의 고향을 방문하여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를 불렀으니 그가 느낀 감격이 어떠했겠는가!
한편 세련되고 노련한 진행솜씨를 보여준 서현은 단지 얼굴만 예쁜 가수의 이미지를 벗고 남북 모두에게 극찬을 받은 최고의 진행자로 자리매김했다는 생각이다.
또한 데뷔 50주년 기념공연을 준비하다 후두염에 걸려 쉬어야 한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방북공연에 기꺼이 참여한 조용필의 헌신은 그 어떤 찬사로도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지금부터 18년전인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만오년동안 일곱차례에 걸쳐 북한을 다녀왔었다. 당시는 남북화해 무드가 무르익고 있었고, 나는 북한 함흥 북쪽에 원전을 지어주는 KEDO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어 북한 출장을 다녀올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속초에서 배를 타고 함흥 북쪽 원전 건설현장을 방문하여 일을 보고 육로로 함흥으로 이동한후, 북한이 제공한 전세기를 타고 평양으로 이동하여 평양에서 일박을 하고 북경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일곱번 반복했다.
육로를 통해 함흥으로 이동하는 중에 북한의 벌거벗은 민낯을 그대로 볼수 있었다. 비포장도로가 굽이치며 넘어가는 고갯길을 느린 걸음을 힘겹게 내딛으며 걸어가는 군상들에게서는 절망만이 느껴졌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는 마태복음 28장 말씀을 연상시키는 종교적 슬로건을 새긴 생뚱맞은 기념탑 아래 파리하고 힘없는 얼굴로 널부러져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슬픔보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북한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배고픔과 헐벗음 밖에 주지 못하는 수령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늘을 향해 마음 속에서 얼마나 여러번 삿대질을 했는지 모른다.
“오 주여! 당신이 계시다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 장면의 의미를 제발 제가 이해할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 주십시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렀다. 변한 게 있다면 북한은 핵을 개발했고 국제제재는 강도가 더 심해졌고, 체제는 거의 붕괴직전에 와 있다는 것 정도다. 3대를 이어온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호탕한 웃음을 순수하게 믿을만큼 우리는 순진하지 않다. 그리고 치킨게임 하듯이 달려드는 그들을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만큼 우리는 충분히 강하다.
다만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큰형의 마음을 가진 남한의 포용력이 우리를 인내하게 한다고 본다. 이미 끝난 게임이지만 경착륙이 아닌 연착륙을 만들어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큰형의 기다림이 우리를 인내하게 한다고 본다.
누가 두려움을 가지고 걱정하듯이 남쪽의 종북세력이 체제전복을 북한과 공모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가정인지 되묻고 싶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단언한다. 매카시즘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제 한달안에 남북정상이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에 핵이 없는 평화를 정착시키는 첫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이제 다시 내딛는 걸음이다.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의미있는 초석이 될수 있기를 기도한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