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문소영의 <조선의 못난 개항>을 읽고
2018-02-01, 조회 : 1139
이영석a
1858 미일통상조약(일본 개방)
1863 고종즉위(흥선대원군 집권)
1867 메이지유신
1873 고종 친정(흥선대원군 실각)
1876 조일 강화도 통상조약(조선 개방)
1882 임오군란
1884 갑신정변
1894 동학혁명, 갑오개혁, 청일전쟁
1895 을미사변
1896 아관파천
1897 대한제국 선포
1904 러일전쟁
1905 을사늑약
1907 고종퇴위
1910 한일합병
고종은 일본 메이지왕과 동갑이었다. 일본 메이지는 메이지유신을 거쳐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하고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시아까지 물리치고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
반면 조선의 고종은 일본보다 20년 늦게 문호를 개방했음에도 세월을 허송하다가 일본에 먹히고 마는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
사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군주 한사람의 힘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주가 흐름을 만들고 선도할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을때는 그 흐름이 달라질수 있다고 본다.
숨가쁘게 흘러가는 대외정세의 흐름을 읽고 강대국에 먹히지 않기 위해 유신을 단행하고 개혁을 진행했던 일본에는 사카모토 료마, 이토 히로부미같은 선각자들이 있었다. 우리의 안중근에게 저격당해 죽은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에서는 근대 일본을 만든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반면 이땅 조선에는 변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적었고, 변화의 추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저변의 공감대가 턱없이 부족했다.
흥선대원군과 고종은 오직 왕권강화에만 관심이 있었지 조선사회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비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못난 국왕이었지만, 지난날 국사시간에 조선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불운한 국왕이었다고 배웠으니 교육이라는 제도에 배신감마저 느낀다.
나라를 팔아먹고 이완용을 비롯한 이땅의 지도자들과 왕족이 일본으로부터 하사받은 선물은 어마어마했다. 한일합병조약의 내용이 그 선물목록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 댓가는 이땅의 힘없는 민초들이 갚아야 할 몫으로 남았다.
세계가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숨가쁘게 전진하고 있을 때 조선은 망한 명나라를 그리워하며 주자학만을 학문으로 숭상하고 나머지는 모두 이단으로 몰아붙이면서 죽은 왕 내지 왕비의 상복 입는 기간에 대해 쟁론하며 날을 새고 있었다.
기자인 문소영은 이 책에서 비슷한 도전에 직면했지만 다른 반응을 보였던 조선과 일본을 적나라하게 비교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일본처럼 하지 못했는가”라는 안타까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계 3위의 경제강국 일본을 무시하는 유일한 국가가 한국이다. 일본을 대할 때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건 어쩔수 없지만 우리가 일본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보다 20년 정도 대외개방을 먼저 했지만 그들은 지금도 저만큼 우리보다 앞서있다. 2012년 말 현재까지 노벨 과학상 분야에서만 16명을 배출했다. 그후에도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일본이 짧은 기간 안에 근대화에 성공한 이유는 사회저변에 자리한 변화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자질 뿐만 아니라 개혁의 추동력을 제공하는 우리 민초 한사람 한사람의 각성과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못난 조선에 대해 기술할 때 다소 표현이 거칠어지는 부분까지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저자 문소영의 문제의식은 치열하다.
추천한다.
1863 고종즉위(흥선대원군 집권)
1867 메이지유신
1873 고종 친정(흥선대원군 실각)
1876 조일 강화도 통상조약(조선 개방)
1882 임오군란
1884 갑신정변
1894 동학혁명, 갑오개혁, 청일전쟁
1895 을미사변
1896 아관파천
1897 대한제국 선포
1904 러일전쟁
1905 을사늑약
1907 고종퇴위
1910 한일합병
고종은 일본 메이지왕과 동갑이었다. 일본 메이지는 메이지유신을 거쳐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하고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시아까지 물리치고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
반면 조선의 고종은 일본보다 20년 늦게 문호를 개방했음에도 세월을 허송하다가 일본에 먹히고 마는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
사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군주 한사람의 힘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주가 흐름을 만들고 선도할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을때는 그 흐름이 달라질수 있다고 본다.
숨가쁘게 흘러가는 대외정세의 흐름을 읽고 강대국에 먹히지 않기 위해 유신을 단행하고 개혁을 진행했던 일본에는 사카모토 료마, 이토 히로부미같은 선각자들이 있었다. 우리의 안중근에게 저격당해 죽은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에서는 근대 일본을 만든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반면 이땅 조선에는 변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적었고, 변화의 추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저변의 공감대가 턱없이 부족했다.
흥선대원군과 고종은 오직 왕권강화에만 관심이 있었지 조선사회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비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못난 국왕이었지만, 지난날 국사시간에 조선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불운한 국왕이었다고 배웠으니 교육이라는 제도에 배신감마저 느낀다.
나라를 팔아먹고 이완용을 비롯한 이땅의 지도자들과 왕족이 일본으로부터 하사받은 선물은 어마어마했다. 한일합병조약의 내용이 그 선물목록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 댓가는 이땅의 힘없는 민초들이 갚아야 할 몫으로 남았다.
세계가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숨가쁘게 전진하고 있을 때 조선은 망한 명나라를 그리워하며 주자학만을 학문으로 숭상하고 나머지는 모두 이단으로 몰아붙이면서 죽은 왕 내지 왕비의 상복 입는 기간에 대해 쟁론하며 날을 새고 있었다.
기자인 문소영은 이 책에서 비슷한 도전에 직면했지만 다른 반응을 보였던 조선과 일본을 적나라하게 비교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일본처럼 하지 못했는가”라는 안타까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계 3위의 경제강국 일본을 무시하는 유일한 국가가 한국이다. 일본을 대할 때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건 어쩔수 없지만 우리가 일본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보다 20년 정도 대외개방을 먼저 했지만 그들은 지금도 저만큼 우리보다 앞서있다. 2012년 말 현재까지 노벨 과학상 분야에서만 16명을 배출했다. 그후에도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일본이 짧은 기간 안에 근대화에 성공한 이유는 사회저변에 자리한 변화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자질 뿐만 아니라 개혁의 추동력을 제공하는 우리 민초 한사람 한사람의 각성과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못난 조선에 대해 기술할 때 다소 표현이 거칠어지는 부분까지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저자 문소영의 문제의식은 치열하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