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사랑하는 대학교회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아직 잘~ 살아있습니다.
연변과기대에 온 지 어느덧 두 달이 넘었습니다.
저번 달에 이해하고 느끼고 있던 과기대가 이번 달에 다르고, 저번 주에 있었던 영적인 갈증이 이번 주는 영적인 풍성함으로 채워지고, 어제 느낀 실망이 오늘에는 감사로 느껴지니 아직도 어떤 학교인지 감이 안 잡힙니다. 어제 갔다면 느끼지 못할 오늘의 은혜가 있으니 그 분의 섬세한 계획 앞에 겸허해지고 제게 요구되는 인내를 연습합니다. 하긴, 온지 두 달 남짓 넘은 제가 어떻게 감히 한마디로 이 곳을 정의할 수 있을까요. 15년 동안 묵묵하게 이 자리를 지키며 그 분의 뜻을 행하는 믿음의 일꾼들도 말을 아끼는데 말이죠.

날씨

벌써 두 번 정도의 눈이 왔고요, 한 이주 전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더니 요즘은 조금 따뜻해져서 영하 5도 정도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센디에고라는 따뜻한 곳에 4년 동안 살다가 갑자기 추운 곳에 오니 건강은 여전히 아팠다 괜찮았다를 반복하며 기복이 심합니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좋다가도 금방 찬 바람이 한 번 휭 하고 지나가면 금방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요. 또 연길시가 겨울에 모두 석탄을 때기 때문에 도시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쌓여서 이것도 아픈 것에 한 몫 한답니다.

사역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네요. 여전히 일 때문에 바쁘게 지내면서도 이제는 생활에 적응이 된 듯 나름대로 남는 시간도 즐기고, 사람들도 제법 많이 사귀고 하였지요.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주된 일은, 교환학생을 위한 홍보영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과기대에 오는 한국에서의 교환학생 수가 급감하여서 더욱더 많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선전용 PR 영상을 만드는데요, 이 비디오를 총 지휘하고 계신 최실장님은 MBC 에서 보도국장까지 지내시다가 작년에 은퇴하셔서 과기대로 봉사하시러 오신 분이세요. 이 분과 학교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교환학생들을 만나며 학교에 대한 장점 등을 부각하며 10분짜리 재미난 영상을 제작하고 있지요. 이 과정에서 한국 한동대와 고신대, 그리고 다른 여러 개 대학에서 온 친구들과 안면이 생기고 또 여기에 계신 몇몇의 외국인 선생님들과도 친해져서 가끔 그들과 영양탕(?)도 먹으러 가는 등 외롭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훈련

연변과기대에서 저는 뼈를 깎고 제 자신을 부정하는 고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입니다. 제게 평생 동안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세 가지의 죄악, 즉 “불규칙”, “불성실” 그리고 “무절제”적인 제 삶의 모습에서 변화하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주님께서는 평소에 제가 갖고 있던 자만심, 허영심, 스스로에 대한 환상 등을 산산조각 내시며 제가 얼마나 죄악에 가득 차있고 부족하고 모자란 자인지를 일깨워주십니다. 그래서 무릎 꿇어 그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게 만드십니다. 그 고백에서 나온 세가지 죄명이 저 위의 불규칙, 불성실, 무절제 입니다. 이 죄는 근본적으로 저의 “게으름”에서 나오는 것인데 저는 이 곳에서 저의 게으름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힘들기 싫어하는 저의 신체적 게으름이었고, 노력하기 싫어하는 저의 정신적 나태함이었고, 민감하게 깨어있기 싫어하는 저의 영적 무딤이었습니다.

이런 죄를 깨뜨리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계속하여 저에게 신체적 아픔을 허락하시며 상기시켜주셨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 일을 통해서 저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sign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시험이 들기도 하였고 울부짖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워낙 “게으른 사람”인데. 내 천성이 이런데. 변하기 싫은데…”

하지만 이런 게으름으로 인해 결국은 주님이 주신 비젼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고 또 나는 그만큼 크게 쓰일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통해 나의 게으름의 실체는 나를 수식하는 기질의 한 종류가 아니라 가면을 쓰고 숨어있던 죄악의 본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장 3~4절

이라는 말씀을 통해 인내하며 훈련하고 있습니다. 인내가 곧 연단, 영어 성경에는 Character라고 나와있습니다. 곧 인내하는 훈련을 통해 사람은 그것을 내면화시켜 캐릭터, 즉 인격이 되고 그 훈련된 인격은 곧 주님의 아름다운 나라를 위해 쓰일 소망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문화 생활

연길에는 마땅한 문화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내에 나가도 음식점이 대부분이고 뭐 노래방과 볼링장이 있다고는 하는데 별로 그렇게 내키지 않아서 한 번도 안 가봤고요. 극장이 있다면 자주 갈 텐데 극장이 없어서 연변에서는 요즘 어떤 영화가 나오는지 그런 것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한 두 달쯤 지난 후에나 길거리에서 파는 불법복제 디비디로 아, 이런 영화가 있구나 정도를 알 수가 있지요.
날씨도 춥고, 여기는 해가 지는 4시 반이면 몇몇의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곳이 문을 닫기 때문에, 퇴근시간인 4시반 이후로 굳이 시내에 나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해가 지는 시간인 4시 반에 신체적 시계가 맞춰져 있는 듯 5시면 모두 저녁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밤”을 준비합니다. 물론 많은 학생들은 밀린 숙제니, 시험 공부니 밤 시간을 주로 학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많은 이들의 문화생활이라는 것은 주말에 시내에 나가서나 잠깐 즐기는 것이지 참 문화적으로 낙후한 환경이라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학생들 노래자랑이니, 음악회니 하는 행사들에서는 모든 전교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문화적 갈증을 푼답니다.

한국에서 저는 워낙 밤에 활동을 많이 했기에 5시면 너무나 깜깜해지는 학교와 그 주위를 보며 처음에는 마구 어디론가 가고 싶은 욕구가 있긴 했지만 이 역시 지금은 많이 적응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와 한족, 조선족 학생들에게 과외나 (그들에게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아니면 외국인 선생님들과의 담소로 보낸답니다.

중국어는 아직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 곳에 오니 영어와 한국어 과외부탁을 많이 받아서 그들에게 제가 아는 언어를 전수하다 보니 정작 저는 딱 앉아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마련되지 못했네요. 열심히 해야겠지요.

학교에서 얼마 전에 3대3 농구대회가 있어서 얼떨결에 유학생 친구 두명과 참가하였는데요, 결승전까지 나가서 아쉽게도 2등을 하였습니다. 마침 그 날 부모님께서 연변을 방문하셔서 저희 집에 사흘 정도 머무셨지요. 저한테는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제가 대학을 다닐 때도 한 번도 오신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과기대라는 곳에서 조우를 하니 저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위안과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셋이서 같이 백두산 꼭대기에서 눈 덮인 천지를 바라보던 순간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기 바로 전날 밤, 컴퓨터에 이런 일기를 썼지요.

“11월 2일 2007년 밤 9시 13분. 일기를 쓴다. 지금 내 옆에 침대에서는 부모님이 곤하게 주무시고 계신다. 컴퓨터 itunes 를 통해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인, “평안을 주노라”가 아름다운 바이올린과 피아노 선율을 따라서 연주되고 있다.
행복에 겨운 마음으로 타자를 두드린다.
아, 가족이란 얼마나 따뜻한 것인가. 나에게 “집”이란 지리학적인 물리적인 어느 “곳”이 아닌,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부모님이 고신 어느 곳이든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모님이 연변과기대에 오셔서 내 방에 짐을 풀어놓으시는 순간, 나의 안식처인 집은 노원구에 있는 아파트가 아닌, 내 기숙사 방이 되어버렸다.”

제게 가족이란 따뜻한 선물을 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주 설교를 하셨던 강죠셉 과기대 부총장님의 일화를 소개함으로 마칠까 합니다.

네 번째 딸 아이가 언챙이로 태어나게 된 점,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한 첫 번째 안면 수술 후 남아있던 커다란 흉터와 핏자국, 몇 번의 수술이 더 필요해 보이던 그 장애의 얼굴…… 그날 밤 아이가 마취가 풀려 너무나 아파 울고 싶지만 그 흉터와 꿴 실 때문에 울 수도 없어 인상을 찌푸리며 너무나 서럽고 가슴 아프게 “엉엉” 거리며 신음을 낼 때 그 아이의 두 팔을 잡고 그 아이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쳐다보며 자신도 그 딸과 같이 통곡했다는 그. 대신이라도 아프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왜 이런 고통을 저에게 주셨습니까 라고 주님께 물었을 때,” “내가 내 아들을 보는 심정이 너와 같았다.” 라고 대답하셨다는 주님. 바로 우리가 못 박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시며 자신도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던 주님. 하지만 그것을 감수해서라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싶으셨던 그 분의 우리에 대한 사랑. 감사합니다…


후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