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몸살을 앓으며

2007-10-23, 조회 : 2011
이명희
몸살을 앓으며

며칠 한기를 느끼며 누워있었더니
냉장고 안이 훤하다
구석에 박혀있던 마늘장아찌가 앞으로 나왔고
날짜를 앞두고 허겁지겁 마셔대던 우유도
배 아플 때 먹겠다고 이웃집에서 얻어온 매실원액도
누군가 깨끗이 비웠다

내 마음도 저렇게 비워주었으면
짜고 맵고 신 것
꺼냈다가 집어넣기를 수없이 한 것
날짜 지난 우유처럼 서서히 상하면서
부글부글 엉겨 붙던 것...
모두 치우고
내 마음도 저렇게 훤해졌으면

텅 빈 냉장고에서 갈바람소리가 난다

김종희 2007-10-24

마음을 비우면 행복해 지지만 냉장고가 비워지면 책임과 의무가 따릅니다.
나이 들면서 건강에 유의하도록 합시다.

윤미숙 2007-10-24

맹희언니! 가을 타요?^^ 집사님 마음과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두 치우고 훤해지면 가야 되는거 아녜요? 그냥 엉킨 채로 살아부러요. 꽉 채워져 먹을거 없는 것보다 차라리 텅 비워진 냉장고가 나아요.

정영희 2007-10-25

저희 집 냉장고는 항상 비워져 있는디유. 근데 별 책임감도 못 느끼고 그냥 사는디유, 가족들이 알아서 적응해유. 집사님은 아프실 때는 비워 놓으시면 전집사님이 가을사랑으로 가득 채우실 건데 뭔 걱정이세유. 저흰 채우시는 이가 없어 저도 그냥 적응해서 살아유.

전성현 2007-10-25

지난 주일 이창대 집사님의 플라톤 명강의 이후로 다들 철학자가 된 듯 싶네요. 특히 항상 여름인 이 집사한테서 이런 '갈바람' 단상이 나오다니...저는 채워주기 보다는 비었다고 타박하는 쪽 입니다. 저 보다 더 못한 남자들 (예를 들면...예가 잘 생각 안나네요...) 돌아보며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아, 예가 생각났습니다. 우리 목사님...?)

김영민 2007-10-25

엽락분본(葉落糞本) -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의 거름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출근길을 서두르는데
명희 집사님과 성현 집사님이 아는체를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고 시간이 약 6시 40분쯤 이었지요. 한국인 노동자의 평균 근무 개시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단풍놀이를 즐기지만,
나무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단풍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생존의 아우성인 셈입니다.

또 어느 누군가 말하기를
단풍은 초록이 빨강. 노랑. 주황으로 ‘물드는’게 아니라
숨어있는 색깔들이 ‘드러나는’ 거 라고 합니다.

이런 사색의 계절만이라도
책과 친한 척(?)해야 할 것 같아서
제가 일하는 무교동에서 가까운 영풍문고나 북스리브로를
어슬렁 거리곤 합니다.

황석영의 "바리데기"와 이재철 목사가 쓴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를 사서 읽고 있습니다.

갈 바람나던 냉장고가 지금쯤 그득하게 채워져 있을 것처럼
만산의 홍엽들 처럼 늘 집사님의 숨어있는 색깔들이 드러나고
빛 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후석,의석이의 거름으로도 멋지시기를........!

PS : 성가대 동복 가운 수선은 어찌 하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