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인도 타르(Thar)에서...

#0 그래, 친구야 가자!
     남편의 친구 B씨는 삼성화재 입사동기이자 최종 면접에서 함께 면접을 봤던 친구입니다. 친구 B씨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능숙하게 칠 수 있고 유창한 영어 실력가였으며 아버지가 교사였던 집안 좋은 면접 라이벌로, 입사 당시 남편에게 아버지 직업이 뭐냐고 묻는 면접관 앞에서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상대적 왜소함을 한참이나 느꼈다고 합니다. B씨가 건강에 실패한 한 친구와 사업에 실패한 한 친구가 사막을 횡단하는 내용으로 다큐 공모전에 응시하고자 하는데, 공모에 합격하면 사막에 갈 수 있냐는 한 마디에 즉시 ‘그래 친구야 가자!’라고 대답했다고 하니 이것이 무슨 영문인지 난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1 이끄심에 순응하자!
     인디아 항공을 타고 델리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인디아 항공 비행기 점검으로 6시간의 비행기 연착이 있었고, 홍콩을 경유하여 홍콩이 목적지인 승객을 내려놓고 다시 홍콩에서 델리까지 가는 승객을 태우는데 시간이 지체 되었을 뿐 아니라 비행기 연착으로 승무원들의 근무시간이 초과되어 전원을 교체 하는 바람에 비행기에서 내려 2시간 30분을 홍콩 공항 내에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매 장시간 비행에 경기를 하는 위기가 있었던 남편의 행보에 큰 난관이었고 환자우대 비즈니스석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아 처음부터 심정이 상하는 등의 일로 심장은 두근두근했지만 ‘우리 편안한 마음으로 이끄심에 순응하자!’라는 다짐 속에 김집사와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요...어쩌지요?
     델리 공항에 도착하여 라자스탄 지역의 큰 도시 ‘조드푸르’까지 국내선을 타고 1시간을 날아가 다시 덜컹거리는 짚차를 타고 6시간을 달려 사막의 작은 마을 ‘자이살메르’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곳에서 낙타 6마리와 함께 120여km의 사막 횡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제주에서도 말타기를 거절했던 남편이 낙타를 타 보겠다는 대단한 결심을 하여 앉아있는 낙타의 앞쪽에는 남편이, 뒤쪽에는 제가 올라타고 남편의 불편한 왼쪽에 나의 왼팔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낙타가 긴 다리를 휘청거리며 일어나는 순간 “하나님,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요...이를 어쩌지요”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낙타가 몇 걸음 걸을 때마다 출렁거리는 폭이 생각보다 일정하지가 않고 너무 높아 남편의 왼쪽균형을 함께 버텨줄 수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제작진도 위태해 보였던지 50m도 채 가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을 중단시켰습니다.

#3 투병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친구 B씨와 남편은 눈을 뜨면 걷기 시작하여 런치타임 장소까지 낙타를 따라 이동했고 도저히 이동이 어렵다고 판단이 될 때는 남편이 먼저 짚차를 타고 약속 장소에 와서 걸어오는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낙타나 짚차를 타고 가장 먼저 런치타임 장소에 도착한 저는 온 몸에 힘이 빠져 오는 남편에게 ‘많이 힘들지?’라고 물어보았고 남편은 ‘내 투병시간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순간 지난 남편의 투병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현재 타르사막에서의 걷기가 남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는 지난시간들을 뒤로한 채 새로운 삶의 계기를 마련하는 작은 이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금과 은이 아니라 물과 그늘이지
     아침에 해가 지평선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부터 화끈거리기 시작하여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은 비가 오듯 흘러내리고 열기가 점점 더해지면서 몸은 소금공장으로 변해가는 듯 했습니다. 런치타임을 기점으로 오후 4시 30분까지는 사람도 낙타도 짚차도 쉬어가지 않으면 다음 일정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더위의 기세는 온 대지를 삼킬 듯 했습니다. 원주민들이 공급해주는 물을 하루에 몇 통이나 마셨는지 아마도 서울에서 1년 동안 마시는 물을 12일간 마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습니다. 친구 B씨가 말하기를 ‘이 곳에서 금과 은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뜨거운 태양을 피할 잡목그늘과 목마름을 해소해 물 이외에 가장 소중한 것은 없는 것 같군요.’
타는 듯한 목마름, 생수,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석양 속에 아로새겨지는 듯 했습니다.

#5 밤하늘에 하얀 시냇물이 흐르네!
     런치타임이 끝나고 4시 30분부터 걷기 시작하여 잠을 청할 텐트가 쳐질 장소에 이르면 지평선으로 해가 지기 시작했고 암흑 속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후르르 날리는 쌀밥을 먹을라치면 들어오는 모래가 입 속에서 버석 거리며 씹히고 식기에 탁탁 부딪히는 사막 메뚜기를 쫒아야 했습니다. 원주민들이 매일 짚차를 가지고 어딘가로 달려가서 물과 함께 펩시콜라를 가져다주었는데 1년 내내 먹지도 않던 탄산음료의 진가가 제대로 나타나는 순간이 바로 하루 일과를 마친 그 캄캄한 사막의 밤에서였습니다. ‘또 하루가 지났구나. 이제 며칠 남았지?’ 하며 날을 헤아려 보며 캄캄함 속에서 침낭을 깔고 누워 하늘을 쳐다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막의 밤하늘 한 복판에 하얀 시냇물이 흐르고 수많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에 시선을 땔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에 생김생김이 다른 나뭇잎 속에서 감동하고 맨 살에 스치는 바람에 환희를 느낀 적은 있었지만 처음으로 만난 은하수와 촘촘한 별들을 보고 뭐라 해야 할 지 언어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6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
     넷째 날 ‘바다박’에서 ‘로드라와’라는 작은 마을로 이동하여 어느 작은 상점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상점은 조각이 섬세하게 이루어진 힌두사원 길 건너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친절하게 물을 건네주는 운전자 덕분에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상점 앞에서 힌디어로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약간의 괴성이 섞여 있는 소리가 들려 자세히 보니 몸이 불편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인 듯 보이는 상점 주인과 아들인 듯 보이는 청년은 우리 짚차를 운전해 주는 분과는 잘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아들인 듯 보이는 그 분은 힌두 사원을 향해 ㄷ자형 보행도구를 가지고 매우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원을 향해 걸어가는 청년의 보행을 방해하는 소와 염소들을 멀리서 동네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청년에게 길을 내주었습니다. 때마침 친구 B씨가 도착하였고 남편이 짚차에서 내려 함께 힌두사원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상점 주인이 찬찬히 살펴보다가 저에게 남편이 stroke(뇌졸증, 풍)이냐고 물었습니다. brain tumor라고 말해 주니 두 손을 모아 행운을 빌어주었습니다. 몇 마디 더 건네었는데 그 청년은 수술을 하였고 이후 매일 빠지지 않고 아침과 저녁 두 번씩 힌두사원에 가서 신께 기도를 올린다고 했습니다. 힌두사원을 향해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아버지의 시리고 아픈 마음이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백성을 향한 아버지의 동일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7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고 꽃이 피어 향기나리라
     120여km의 행진 속에 인내의 한계를 느낄 때 오아시스를 만났고, 한낮의 더위를 피해 해가 뜨고 질 때에 자태를 뽐내는 꽃을 발견하였습니다. 남편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 지친 몸을 쉬면서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 했고 이 열악한 형편과 모양 속에서 터져 나오는 자신의 기도를 스스로도 의아해 했습니다. 나를 넘어선 기도는 힘이 있고 우리 자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기둥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사막과 같은 메마름 속에 있을지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그 곳 타르에서도 샘과 꽃이 있었고 생명력이 움트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신 목사님과 전도사님 그리고 성도님들께 한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