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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눈물 (눅 7:11-17)

2022-05-07, 조회 : 1006
김범식 목사

예배 전,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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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눈물 (눅 7:11~17)

김범식 목사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긍휼사역입니다. 인생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긍휼이 고침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나인 성읍 과부 이야기는 자식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어머니를 주님이 위로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주님의 존재가 우리 인생에 어떤 분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 주님은 인생의 어떤 순간에도 함께 하는 분입니다. 가버나움에서 로마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신 주님은 기뻐하는 무리들과 함께 나인 성읍으로 들어가다가 성읍에서 무덤으로 가는 장례행렬을 만납니다. 두 극단적인 행렬이 마주쳤습니다. 백부장의 놀라운 믿음을 보시고 말씀만으로 종을 고치는 역사를 보고 사람들은 놀람과 기쁨으로 주님을 따르다가, 외동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과부와 사람들의 행렬과 만나게 됩니다. 백부장이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고 회당을 지어주고 주님을 믿음으로 찾아온 사람이라면, 과부는 가난과 외로움 가운데 이제 아들의 죽음으로 눈물 흘리며 비통해 하는 믿음조차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불행 당한 인생을 만나시고 위로해 줍니다. 인생의 어떤 모습과 순간에 상관없이 우리 곁에 함께 하시는 긍휼의 주님입니다.

둘째, 주님은 인생에게 긍휼로 행하는 분입니다. 긍휼이라는 말은 인간의 깊은 속, 내장, 모태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불행과 슬픔에 대한 주님의 긍휼이 치유사역의 이유였습니다. 동정은 마음으로 끝나지만 긍휼은 행동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리와 창기들과 함께 하며 밥을 먹으며 친구가 되었습니다. 자녀에 대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물을 긍휼이 여기며 야이로의 딸을 살리고 귀신들린 아들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부모의 눈물은 자녀가 흘리는 눈물과 결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자녀의 불행을 대신 담당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눈물을 긍휼히 여기고 눈물과 한숨을 그치게 하는 역사를 보여주는 주님이었습니다.

셋째, 주님은 인생을 참 소망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유교적 전통은 죽음을 기리면서도 기피하려 합니다. 죽음을 애통해 하면서도 부정하게 여깁니다. 불교는 인간의 오욕칠정에서 벗어나 해탈(nirvana)을 추구하며 거리두기(detachment)를 수행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의 불행을 긍휼히 여기며 고통당하는 인생을 가까이 하며 섬깁니다. 애통하는 자와 긍휼히 여기는 자가 가질 천국복을 선포하였습니다. 죽음 너머의 생명을 희망으로 전하며 죽은 사람이라 여기지 않고 살아있는 청년을 깨우는 것처럼 말씀합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이것이 주님이 세상에 전하는 소망입니다.